요즘생각

싸락 비 오는 날은 시선이 멀리 간다

사과꽃 박홍정하 2023. 6. 2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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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9시 전에 얼른 커피 타고 물통 채워서 제 방에 들어갑니다."

 

1년 차 사무관이 한 말이다. 

 

어느새 우리 주위는 출퇴근 시간을 체크하는 상사보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주는 상사가 많아졌다. 혹시라도 늦게 들어오는 직원이 무안할까 봐 9시 전에 자기 사무실에 들어간다는 그는 멀리 더 큰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다. 70년대 전후로 태어나 90년대에 20대였던 사람이 밀레니얼세대, Z세대와 함께하는 지금의 행정 조직은 드러나지 않는 진통을 겪고 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사무실 안 담배 연기에도 익숙했다. 과장님의 책상 위에는 늘 재떨이가 있었고 아침마다 깨끗이 씻어 화장지를 한 겹 깔아 물을 적셔놓았었다. 그 시절 과장의 말은 서설이 퍼랬고 요즘처럼 인권, 갑질 같은 말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우리 세대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쉽게 이해되고 때로는 손뼉 쳐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까지도 우리는 과장실 내방 객에게 차를 갖다 주는 일을 일로 삼았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이제 보기 드물다. 지위를 막론하고 자기 손님은 자기가 대접한다. 첨단 행정 장비에 맞먹게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아진 이유도 한몫한다. 막역한 사람이 방문했을 때 스스로 차 한잔 갖다 주는 경우 외에는 자칫 차 한잔의 부탁이 젊은 사람들의 업무 흐름을 방해할 수 있고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편리해진 대신 삭막해진 부분도 있다.  

 


 

이집트의 고대 벽화에 깨알보다 작은 글씨의 상형문자가 발견되었단다. 고고학자들이 수년에 걸쳐 분석해 보니 그 내용이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모든 후세대는 앞세대가 보기에 늘 부족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설익은 부분이 후세대만의 특성이면서도 특권일 수 있다. 누구나 그 젊은 세대를 거친다. 그렇기에 세대 간의 틈새를 이해하고 극복하고자 고민하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좀 더 젊던 날 함께 일했던 선배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부분이 있다.

 

서로 가까워지려는 세대 간의 노력은 어느 시대고 존재했을 것이다. 단지 지금처럼 세상이 급변하고 각자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경우는 드물었을 것 같다. 우리 세대가 처음 공직에 들어왔을 때 선배들이 다가온 방법은 주로 회식이었다. 근무시간의 연속이라는 규율이 먹혔던 시절이기도 하다. 인격적이라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친숙해지려는 그들의 노력을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요즘처럼 다양한 직무 교육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라 정말로 회식 자리는 구성원 모두가 서로 업무를 이야기하고 배우는 자리기도 했다. 

 

지금은 클릭하나로 자기 업무에 대한 매뉴얼과 노하우들을 검색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는 수만 가지의 지식과 정보가 넘쳐난다. 덕분에 선배들의 역할이 줄었다. 무엇보다 일과 개인생활을 확실하게 구분하고자 하는 젊은 층의 취향은 어느 조직에서나 뚜렷하다. 그렇지만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곳에서는 서로 간의 공감과 때로는 위로가 필요하다. 함께 추구하는 공동의 목표와 기대가 있기에 그 필요성은 전 세대가 같이 느끼지 않을까. 

 


 

생활은 편리해지는데 사람은 더 멀어져 간다. 조직 내에서도 업무가 세분화되면서 옆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세대 간, 동료 간의 사이가 갈수록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혹은 조직이 개인의 일탈을 지원해 줘야 한다"던 말이 떠오른다. 최 선임자가 한 말이라서 더 웃음이 났다. 그렇게라도 하여 세대 간의 어울림을 끌어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작은 알맹이를 품은 듯 토토톡 떨어지는 비가 싸락 비다. 옷이 젖을 것 같지 않은데 차창에는 그 알갱이가 모여 물방울이 된다.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맨눈으로 비 알갱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가. 무얼 그리 찾는가. 창밖으로 내다봐도 멀리 허공만 보인다. 개개인의 노력과 조직의 의도가 맞아떨어질 때 큰 배는 도도한 항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고민은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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