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문

[홍계월전 - 고전] '남녀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보다'

사과꽃 박홍정하 2022. 10. 2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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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차이를 다시 생각해 보다

 

나는 평소 건강한 편이며 코로나19 백신은 4차까지 맞았다. 부서 내 가까운 사람들이 확진될 때마다 여러 차례 검진 대상에 올랐으나 무탈하였기에 나는 그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울줄 알았다. 그러나 심한 몸살을 앓으면서 검사한 자가 검진에도 나오지 않던 결과가 뜻밖에 확진으로 나타났다. 남편이 확진되면서 나도 병원 검사를 받으며 알게 된 것이다. 몸살이 낫고 출근한 날에 아무런 증상이 없었기에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사람의 체력은 엇비슷해 보여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고 개개인의 차이도 있는 듯하다. 나는 그렇게 법정 격리 대상이 되었고 일주일간 재택근무를 했다. 약간의 피로는 평소에도 있었기에 자세히 증상을 살펴보니 미미하게 호흡 끝이 달랐다. 마치 감기가 끝난 뒤 폐에 느껴지는 작은 부담감과 코끝에 남는 매운맛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일상으로 복귀한 뒤에도 나는 체력에 큰 변화가 없었기에 감사하면서 신체의 신비로움을 느꼈다.

 

공식적으로 얻은 7일간의 재택근무를 나는 너무나 찰지게 보냈다. 세끼 밥을 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달았다. 오랜만에 집안의 화초들도 자세히 보았다. 두어 해 전에 씨앗을 띄워 손가락 크기만 하던 레몬 모종이 그사이 내 가슴께까지 자라고 있었다. 물만 먹고 사는 식물도 이렇게 풍성하니 사람의 몸은 단련을 잘하면 남자 여자를 떠나서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앉았다 누웠다 하며 환자 같지 않은 환자는 하루종일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그 시간 동안 만난 사람이 계월이다. 남자들을 압도하는 무술을 겸비하고 체력이 출중한 홍계월의 이야기다. 첫 페이지 여성영웅소설이라는 표기에 우와 감탄이 나왔고 궁금증이 일었다. 19세기 초에 쓰였는데 작자 미상이다. 책의 절반은 원문 주석을 담아서 실제 이야기 분량은 짧았다. 그래서 금방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절의 여성 영웅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내용이기에 여성 영웅인가 싶었다. 한달음에 홍계월을 따라가며 읽었는데 그녀의 생각은 어쩌면 그렇게 지금과 닮았는지. 어찌 하나도 변하지 않았는지. 왜 모든 것을 다 이루고 가졌으면서도 여성 영웅은 남자이지 못함을 통탄하는지 애석했다. 처음 책을 펴면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을 갈망했기에 실망이 컸는지 생각해 보았다.

 

코로나19에 부부가 같이 감염되면서 일주일 내내 집에서 밥을 해 먹었다. 신통하게 총 3번의 검사를 했는데도 방학을 맞아서 집에 와 있던 작은 아이는 전염이 되지 않았다. 멀쩡한 아이를 제 방에 격리하고 거실과 나머지 방을 확진자 둘이 차지를 했다. 하루 세끼 밥을 해 먹으면서 젊었던 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 뿐 아니라 가족들 밥을 홀로 다 챙겼고 청소 빨래 설거지며 분리수거까지 모든 일은 내 차지였다. 나이 오십을 전후하여 어느 날인가부터 남편은 설거지를 거들기 시작했다. 아이들 어릴 때 내가 얼마나 바쁘게 살았을지 감이 오느냐고 물어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요즘은 찌개를 끓이기도 하고 설거지도한다. 좀 더 일찍 함께 가사 일을 하고 살았더라면 지금도 도와주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서로 더 편안할 것 같다. 같이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는데도 남자 일 여자 일로 구분되어 진다. 농경사회였는 한국은 할머니 어머니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사회가 유지되어 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문제는 그 희생을 당연시하고 강요하니 고금을 막라하여 이 땅의 여성들은 늘 우울하고 아프고 슬프지 않았을까.

 

작은 아이가 중2 때였다. 매스컴에서는 연일 약자를 향한 묻지마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이 있었다. 강남역 인근 한 건물 화장실에서 한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그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로 불리면서 여성들의 단체 행동이 촉발되었고 더 이후에는 남성 여성의 대결 구도가 조성되기도 하여 많은 우려를 낳기도 했다. 그즈음 세계여성의 날 집회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중심으로 열렸는데 중2 아이가 그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했었다. 엄마가 같이 동참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했었다. 그 해 고3 큰애의 대입 실기 시험에도 서울에 같이 가지 못했는데 나는 중2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냈었다. 어쩌다 보니 현수막을 들고 도로를 행진하는 선두 즈음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지만 나의 모든 신경은 자신이 직접 만들어 온 피켓을 들고 걷고 있는 아이에게 쏠려있었다. 백인계 외국인 여성들도 있었고 동남아 여성들도 있었다. 그날 참석한 여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지 하늘은 온통 흐렸고 진눈깨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서러웠다. 아이와 같은 여성이었기에 그 서러움을 오롯이 같이 통감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별 변화가 없는 듯하다.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되었다는 책 ‘82년생 김지영이 연일 화제였다. 일본에서도 출간되고 영화로도 제작 되었지만 주위 반응은 놀라웠다. 그 책은 젊은 남녀들의 실랑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제작된 영화를 남편도 보기 저어하는 것이었다. 세상이 노래지는 느낌이었다. 그 영화는 이후 TV에 여러 차례 방영 되었지만 남편은 끝내 보기를 마다했다. 한때는 합리적이라 느꼈고 최소한 나와 같은 사고를 가졌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런 모습이 현 대한민국 남자들의 생각이라고 여겨져서 솔직히 암담했다. 딸이 있고 여동생이 있고 어머니가 있다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약자에게 특히 여성에게 인색하다고 여겨 왔다. 이제야 어렴풋이 느낀다. 우리 교육은 그 어디에도 사람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 적거나 없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없고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육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남녀를 구분하는 위험한 발언을 하는 모습까지 있었다.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살핀다. 기차가 정해진 길을 갈 때는 다양한 조건이 필요하다. 철로가 잘 나 있어야 하고 기관사도 있어야 하고 연료도 끊임없이 보급해야 한다.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길에서 누구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종류로 나뉘는 여성과 남성의 조화는 살아가는 내내 모두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여성영웅 계월은 전쟁터에서 보통의 남성을 넘어서는 체력과 무술을 가진 인물로 나온다.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는 실력이 남성을 뛰어넘어 신의 경지다. 훗날 자신의 남편이 되는 보국을 여러 차례 홀홀 단신으로 적들의 무리에 뛰어들어 구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때부터 같이 자라고 같이 무술을 연마한 남편에게 여성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외로워한다. 황제로부터 모든 걸 다 받았지만 정작 자신이 남자이지 못하고 여자임을 한탄하는 부분에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속상했다. 자신의 실력으로 가지게 된 많은 것에 만족하며 여자임으로도 기쁠 수는 없었을까. 남자이지 못해서 억울해하는 모습은 마치 여성은 하위의 존재라는 정의를 깔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사회가 그러한 정의를 내린 것일까.

 

계월이 부모를 잃었을 때 데려다가 자신의 아들과 같이 공부할 수 있게 한 사람이 보국의 아버지다. 그는 계월을 평국이라고 이름 지어주고 자신의 아들과 같이 문무를 겸비할 수 있도록 했다. 남녀 구분하지 않고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하지 않고 교육 시켰다. 아이 때부터 평국은 보국을 능가했는데 그래서 보국은 평국에게 경쟁심을 느낀 것일까. 같이 자라고 자신의 목숨을 여러 차례 구해주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도 평국을 홀대한다. 애첩을 두고 여성들을 가까이한다. 그러한 모습이 보편적인 사회의 한 형태였을까. 보국의 너절한 여성 편력을 보아 넘기는 것이 그 시절 여자들의 통념이었을까. 그래서 평국은 남성이 되지 못함을 통곡한 것일까. 출중한 재주로 남성도 이루기 어려운 최고의 자리를 다 차지하고 천자의 벼슬을 다 받고도 남성이 되지 못함을 애통해한 평국의 마음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같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다.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홍계월의 이야기를 많이 읽어 보았으면 좋겠다. 그 시절 서글픔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현시대 상황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지금도 그 옛날에도 여성과 남성은 모두가 소중한 사람이며 같이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